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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 정상인데 당뇨?"… 한국인 '마른 당뇨' 걸리는 이유는
최근 체질량지수(BMI)가 정상임에도 당뇨병 진단을 받는 이른바 '마른 당뇨(Lean Diabetes)' 사례가 적지 않다. 겉보기에는 비만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체내 대사 지표를 들여다보면 비만 환자와 유사한 '대사적 과부하(Metabolic Overload)' 상태인 경우가 많다. 단순히 체중 수치만 믿고 당뇨병 안전지대에 있다고 안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의학계는 그 원인으로 한국인의 유전적 특성인 '작은 췌장'과 서구화된 식습관의 부조화를 지목한다. 서구인에 비해 췌장의 크기와 인슐린 분비 능력이 떨어지는 한국인이 고열량 식단과 운동 부족에 노출되면서 대사적 과부하가 걸리는 셈이다. 특히 이러한 불균형은 근육량 감소를 가속화해 혈당 조절 능력을 더욱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에 내분비대사내과 김병준 교수(가천대길병원)와 함께 췌장의 기능적 특성을 중심으로 한국형 마른 당뇨의 병태 생리 기전을 분석하고, 내장 지방 억제 및 근력 강화를 통한 실질적인 관리 전략을 짚어본다.
서구형 식단을 감당하기엔 작은 '한국인의 췌장'
통상 비만은 당뇨병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나 한국인의 발병 양상은 다소 다르다. 2024년 대한당뇨병학회(KDA) 자료에 따르면, 국내 당뇨병 환자의 약 46.2%는 체질량지수(BMI) 25 미만의 비만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환자의 절반 가까이가 체중 관리만으로는 예방하기 어려운 '마른 당뇨'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김병준 교수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한국인 고유의 해부학적 특성에서 찾으며, "한국인의 췌장 크기는 서양인 대비 약 10% 작다"고 설명했다. 췌장의 용적이 작다는 것은 혈당 조절을 담당하는 '베타 세포(Beta Cell)'의 절대적인 수가 적어, 인슐린 분비 능력 자체가 저하됨을 의미한다. 이는 과거 채식 위주의 식단을 유지해 온 한국인의 유전적·환경적 적응 결과로 해석된다.
문제는 선천적으로 '작은 췌장'을 가진 한국인이 고열량·고지방의 서구화된 식습관에 노출되었을 때다. 인슐린 분비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과도한 영양분이 공급되면, 췌장에 과부하가 걸리고 지방 침착이 가속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특히 한국인의 췌장은 상대적으로 지방 침착이 더 잘 일어나는 특성이 있어, 베타 세포가 손상될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췌장에 낀 지방은 베타 세포에 직접적인 독성을 유발하여 인슐린 분비 기능을 더욱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는데, 결국 유전적 취약성과 환경적 요인이 결합해 당뇨병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게 된다.
팔다리는 가늘고 배만 나온 '거미형 체형'의 경고
이러한 췌장의 구조적 한계를 안은 채 고열량의 식습관이 지속된다면,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복부만 돌출되는 이른바 '거미형 체형'으로 변모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외형적 변화가 아니라 체내 대사 시스템의 붕괴를 알리는 위험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김병준 교수는 "내장 지방이 축적되면 '아디포카인(Adipokine)'이 분비되어 '인슐린 저항성(Insulin Resistance)'을 유발한다"며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면 섭취한 에너지가 근육으로 가지 못하고 다시 지방으로 축적되는데, 이렇게 늘어난 지방은 저항성을 더욱 악화시키고 근육량은 계속 줄어드는 악순환을 부른다"고 설명했다.
즉, 근육 내 흡수가 차단된 잉여 에너지가 내장 지방 형태로 축적되며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BMI 정상이지만 체지방률 높은 '근감소성 비만', 당뇨 위험 3.9배↑
이처럼 체중과 BMI는 정상 범주이나 근육량이 부족하고 내장 지방이 과도한 상태를 '근감소성 비만(Sarcopenic Obesity)'이라 한다. 포도당의 절반 이상을 소모해야 할 근육이 위축되면 대사적으로 매우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천대길병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근감소증이 있는 사람은 당뇨병 발병 위험이 3.9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병준 교수는 "마른 당뇨는 근육이 적은 상태에서 내장 지방이 쌓여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며, 여기에 노화와 운동 부족이 더해지면 당뇨병 진행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고 경고했다.
혈당 조절의 핵심 '허벅지 근육', 맞춤형 근력 운동 필요
결국 '마른 당뇨'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식이 요법과 체중 관리뿐만 아니라, 췌장의 부족한 인슐린 분비 능력을 보완할 수 있는 생리학적 저장소로서 근육, 특히 허벅지 근육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허벅지 근육은 섭취된 포도당을 흡수하고 저장하는 대사적 기능을 수행하므로, 허벅지 근육량 증가는 혈당 관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허벅지 둘레가 1cm 감소할 때마다 당뇨병 발병 위험도는 남성에서 8.3%, 여성에서 9.6%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다.
그러나 관절 기능이 저하된 중장년층이나 당뇨병 환자의 경우, 과도한 근력 운동은 오히려 근골격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 김병준 교수는 "당뇨병 환자는 관절 질환을 동반하는 사례가 많아 일반적인 스쿼트 동작은 관절 손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벽에 등을 기대고 수행하는 '월 스쿼트'나 지지대를 활용해 체중 부하를 조절하는 방식이 보다 안전하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수중 보행이나 킥 동작 등 부력을 활용한 운동 또한 관절의 부담을 줄이면서 하체 근력을 강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으로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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